배민 기획자의 일

우리는 기획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방법론적 이야기 보다는, 배달의민족의 기획자 혹은 IT 업계 프로덕트 매니저로서의 삶이 어떤지 조금은 촉촉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했습니다. 

IT 업계에 취직 또는 이직을 하고 싶다거나, 기획 업무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면 이 책을 읽고 기획자라는 직업이 어떤 것이고 기획자들의 삶은 어떤지 조금이라도 이해도가 올라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직무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PM이라는 직무는 언제나 고독하고 외로운데 늘 여러 부서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직업이다. 즉, 혼자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기획한 것을 결과물로 완성하려면 언제나 '왜? 어떻게? 언제까지?' 라는 모두의 물음에 설득할 수 있는 답변이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꼭 오픈을 해야하는 정해진 일정이 있다면 서로의 일정 테트리스를 진행해서 억지로라도 끼워 맞춰서 일정을 맞추어야 한다. 

 

내가 맞는 방향대로 잘 기획하고 있는지, 내 기획안은 정말 이해하기에 괜찮은 건지, 어떤 문제가 있어서 리뷰 때 반응이 별로 없던 건지 등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동료들의 객관적인 피드백도 필요하고 감정적인 위로가 또한 중요하다. 

 

직접 경험해보고 느껴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려면 종종 동일한 경험을 편견없이 따라해보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협업을 하고 대화의 흐름과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갖기는 어렵고, 가끔은 거짓으로 "이해한다" 또는 "동의한다" 라는 말을 건낼 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되뇌이는데, 이 과정은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이해를 위한 연습과정 중 일부가 되었다. 

 

무엇을 소비하는 것은 단순히 구매하는 것이 아니며 나의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가치관과 삶까지 바꿔주는 행위라고 더욱 확신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을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파악하는 과정은 나에 대해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넓은 시각과 얕은 소재들로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대화를 잘 할 수 있다는 건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쌓기에도 좋을 뿐더러 새로운 모임에 가게되거나, 의외로 면접을 볼 때 또는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까지 자신감을 주고 효율성을 높여줄 때도 많다. 가령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업무적으로 급하게 처리해야 되거나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경우에 대화를 한 번이라도 해 보았던 분들과의 소통에서는 서로간의 오해와 부담이 적었고,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에도 어렵지 않게 조율을 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분야를 끝까지 가보았을 때,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때, 한계를 보았을 때에는 나의 결정에 대해 내가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노력들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결정한 현재 나의 직무, 내가 추진한 기획과 내가 하는 업무에 확신이 들지 않을 경우에도 내가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까지 노력했는지를 알고 있다면 금세 확인이 생긴다. 처음과 끝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