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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다치지 않게

루돌푸다요 2024. 6. 5. 12:21

전화기 끝에 그리움이 매달려 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전화번호 목록을 훑어보며 전화를 걸 누군가를 찾는 일이 줄어들고, 무뚝뚝한 수신호를 

들으며 상대방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일도 드물어졌습니다. 그리운 이와의 통화 기능을 잃어가는 전화기를 보며

통화 버튼 대신 그리움만 연신 눌러대게 되었지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인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만 어쩐지 직접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전하는 것만은 점점 어색해지는 듯합니다. 

'그립다', '보고 싶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어려운 말이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고백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 보세요. 애꿏은 날씨 이야기로 시작을 해도 좋고, 밥은 먹었냐는 인사를 

서너 번씩 반복해도 좋습니다. 

 

혼자 외로워 말고 

앉은뱅이 의자가 점점 길어지더니 다른 사람들이 올라올 수 없는 높이에 나를 올려놓고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련히 알아서 한다구 ~ ' 중간에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무슨 마음이었는지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망설이다가 시간은 흐르고 이제는 외로움이 싫어서 내려가볼까 했는데 아뿔싸, 너무 높은 곳에 홀로 있었네요.

주저하는 사이 시간은 또 흐르고 이제는 외로움을 피해 내려가고 싶은 마음보다 내려가는 것 자체가 무서워져 

버렸습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없으니까요. 

누구든 좋으니 "내려와도 좋아" 라는 말만 해 준다면 이젠 뛰어내릴 생각도 있는데 말이죠. 나를 이 의자에 앉게

한 사람이라도 괜찮으니 말입니다. 

 

기다리고 있다

살면서 매 순간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늘 평화롭고, 아늑하고 따뜻하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이따금 사막처럼 숨막히게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기도 하고, 눈도 못 뜰만큼 거친 폭풍우가 쏟아지기도 하지요.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기억이 함께하기도 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기억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는 곳, 바로 

내 마음 속입니다. 

그 안에 끝이 어딘지 모를 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내가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지요. 

그게 누구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누구에게는 연인, 누구에겐 가족, 친구, 꿈, 목표 ..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벽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은 같겠지요? 

그 간절함의 시간이 쌓일수록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벽도 점점 허물어져 갑니다. 

아직은 작은 틈새일 뿐이지만, 점점 크게 무너져 언젠가는 그토록 바라던 이 벽 너머의 무언가와 만나게 될 것 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간절한 그 마음, 부디 차곡차곡 잘 쌓아가며 기다려 주세요. 

 

벽은 곧 무너질 거야. 거기서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애정결핍 

사랑을 시작하면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갖는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이는 권력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게 되고 더 사랑하는 쪽이 덜 사랑하는 쪽에게 끊임없이 마음을 내어주는 관계가

돼 버립니다. 1만큼의 사랑을 받고 다시 1만큼의 사랑을 내어줄 정도는 아니어도 관계를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상대가 준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마음을 잘 받을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둘 다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운 좋게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에도 그것을 잘 간수하지 못해서 소중히 보관하지도 못하고, 받아도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계속 상대방에게 애정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결국 서로가 지쳐버리기 마련이지요. 그때에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충분히 상대방의 마음을 받았음에도 마음이 '텅' 비어있다고 느낀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받은 애정을 잘 간직

하고 있는지 말이에요.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아 ! 

"가 ! 가란 말이야 !" 라는 마음에도 없는 외침에 진짜 돌아서고만 남자를 바라봄며 여자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되묻죠. '그런다고 진짜 가냐?'

가라고 소리쳐 놓고 진짜 가느냐고 되묻는 이 아이러니한 마음 

우리도 종종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외칠 때가 있습니다. 

"날 혼자 내버려둬 ! " 

누구도 말 붙이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보면 이내 '그런다고 진짜 내버려두다니..'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다시 누군가를 부르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죠. 

누군가가 그리움 마음과 홀로 있고 싶은 마음 그 가운데에서 진한 고독이 파고듭니다. 

이런 사람에게 다가가려 한다면 눈치 백단은 되어야겠죠 ?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혼자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의 

균형을 잘 파악해야 할 테니까요. 

 

말싸움

가까운 사람과 말싸움을 시작하면 종종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시간이 흘러 서로를 보듬고, 덮을 수는 

있겠지만, 한번 패인 상처의 깊이는 꽤 오랜 시간 쓰라림을 안깁니다.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가 어떤 말에 쓰러지는지, 어떤 부위를 얻어맞으면 K.O 당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날린 한방은 빗나가지도 않고 정확히 치명타로 꽂힙니다. 

상대를 공격할 때엔 송곳니를 드러내고 오로지 급소를 향해 이빨을 들이댑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요. 가까울수록,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이일수록 보듬어줘도 

부족할 텐데 우리는 가끔씩 서로를 향해 남보다 더한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매번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또 어느새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이말은 아닌데'

하며 후회해 봤자 이미 충돌은 일어난 직후일 때가 많죠?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그 다짐마저

매번 반복되곤 합니다. 이런 다툼을 피할 수 없다면 다음엔 최소한 서로의 급소는 피하자고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쓰러지는 건 결국 내가 쓰러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입니다. 

 

이별후

이별의 후유증은 어쩐 강력한지 특A급 태풍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듯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사방으로 흩어진 나의 조각을 추스르기도 시간이 좀 지나야 가능할 정도로 말이지요. 

생살을 꿰매는 데도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는 마당에 예쁘게 꿰매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겠지요 ? 

이별의 형벌로 인해 능지처참을 당한 마음을 하나하나 꿰매어 거울 앞에 서서 바라보면 그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거예요. 여기저기 틈새도 보이고, 아물더라도 흉터가 많이 남을테니까요. 가만 보면 여기저기 기워 놓은 

프랑켄슈타인이 따로 업습니다. 말끔했던 처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이별은 그렇게 새로운 나를 

아프게 만나는 관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새 살이 뜯겨져 나간 틈새를 잘 아물게 돕고 

연분홍빛 흉터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지요. 그 이상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이상 할 수도 없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 수많은 끈이 이어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색이 바라고 말라 시든 채 버려져 있고, 어떤 것은 팽팽하게 당겨져 언제 끊어질지 모를 만큼 위태로워

보이고, 또 어떤 것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기분 좋게 이어져 있기도 하네요. 

색도, 길이도, 탄력도, 심지어 촉감도 모두 다른 그 끈들은 타인과 나 사이를 순간, 혹은 평생의 시간 동안 이어 

주고 있지요. 인연의 끈은 내가 상대방에게 던져둔다고 해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나에게 

걸쳐 둔다고 해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서로가 이어진 끈을 잘 붙잡고 있어야 비로소 인연이 시작되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끈을 잡고만 있을 게 아니라 간간히 풀도 먹이고, 잘 잡고 있나 당겨보며 확인도 하고, 

어디 썩은 곳은 없는지 관리도 해줘야 튼튼하게 갈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바라보아야 이 인연의 끈이 오래도록 튼튼히 이어지게 됩니다. 

 

면회

상처투성이인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의 소행으로 보이지만 실은 내 손으로 꽂은 화살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내안의 적이 나였다니 의외지요 ? 

직접 찌르는 경우가 아니라도 내 마음에 꽂혀가는 상처를 뻔히 보면서 내버려두는 것, 그것도 결국 내가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입니다. 

상처라는 것은 생명력이 강한 편이라 쉽게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혼자만 살지도 않지요. 

마치 잡초와 같아서 뽑아내도 자라나고, 뽑아내도 또 자라납니다. 

내 마음에 생긴 상처를 없애는 일은 간단히 '응, 여기 있네. 자, 한 번 쓰다듬어 줄게 . 이제 됐지?' 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내와 끈기, 그리고 강한 자기애를 필요로 하지요. 

뽑아도 자랐다면 다시 뽑아주고, 옆자리에 뾰족하게 상처가 솟았다면 그것도 뽑아줍니다. 

그리고 잘 다독여주고, 다음 날 다시 보러 가서 또 뽑아주고 다독여주고 지겹다고 그만두지 말고 계속 반복하세요.

내가 행복해야 옆 사람 행복을 바랄 수 있고, 그렇게 번져 나가야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작점인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그러니 적극적으로 보살펴주고, 끝까지 보듬어주셔야 합니다.

 

이제야

살다 보면 내 마음에 대해 무심했다가도 어떤 날은 아주 호들갑스럽게 예민해지는 것처럼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무관심과 관심을 오갈 때가 있더군요. 

그렇게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해해 줄 것이다' 강하게 믿고 있기도

했고 '이해해 주지 못할' 다른 사람을 더 신경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소홀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상대의 아픔이 예상외로 너무 컸음을 알게 되면 처음엔 놀랐다가 이내 미안해지고, 거기다 이미 위로를 

건넬 시기를 놓쳐버린 것만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그렇게 멍하니 상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넌 나한테 관심도 없었잖아!" 라는 강펀치를 맞는 순간, 밀려오는 

핵 폭탄 급 미안함이란 !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상대의 그 한마디 외침 속에 희미한 도움의 요청이 들립니다. 아직 괜찮지 않으니 이제라도

나를 위로해 달라고 말이지요. 

 

가장 깊고 어두운 곳 

마음은 아주 깊어서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이 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주 비유되는 말로 우주 같다는 말이 있겠네요. 

내 안에 있지만 다 알기 어려운 우주 같은 곳이 바로 마음 입니다. 

그 안에는 따뜻한 태양이 내리쬐는 곳도 있고, 차가운 달이 비추는 곳도 있고, 빛이 아예 닿지 않는 후미진 곳

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 자신이 숨죽여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처음엔 그곳에 사는 '나'도 태양이 내리쬐는 밝고 따듯한 곳에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먹고 살자니 일도 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눈치도 봐야 하고, 다른 사람 신경 쓰고, 가족들 챙겨주

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은 점점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겠지요. 

점점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여유로운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되죠. 

'너무 힘들다. 이젠 너무 지쳤어' 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작은 등불 하나 들고 내 마음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불빛 하나 없는 깊은 골방, 거기서도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서 만나게 되는 나 ..

맘먹고 찾아 나서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찾은 기쁨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 안도감은 내가 내 마음을 찾아 끌어안음으로써 온 것 같겠지만, 사실 웅크리고 있던 진짜 내가 밖에서 

찾아 온 나를 안아줌으로써 오는 것 입니다. 

다시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웅크리고 있던 진짜 나의 손을 꽉 움켜쥐고서 밝은 곳으로 천천히 함께 올라오세요. 

 

신호

마음이라는 것, 참 매력적이지 않나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고, 가장 중심에 있으면서도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게다가 어느 순간엔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수다스럽다가도 또 어떨 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기도 합니다. 

또 애정을 끝없이 갈구하다가도 냉담하기 그지없을 때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표정을 읽을 수도 없고, 

소리도 나지 않아서 귀로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처럼 많은 애정을 쏟을 필요가 있지요. 

여차하면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고 마니까요. 

기분이 오락가락하거나 같은 대상, 현상에 대한 판단이 계속 바뀔 때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마음이 지금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걸까?' 

그럴때 가만히 내 마음을 마주해 보세요. 

처음엔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이해 못할 수도 있고 그 시간 자체가 어색하고 괴롭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내 마음이 하는 말은 결국 나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몇 번 시도하다 보면 해석이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 올 거예요 

 

언제, 언제쯤

봄이 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있으면 그 얇고 작은 것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마음껏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에 부러움이 생깁니다. 

한 번쯤 나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화려한 날개를 펄럭이며 좀 더 자유로워지고 그로 인해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이지요. 

얼른 이 답답한 옷을 벗고 나만의 색과 무늬를 가진 날개가 돋아나 있기를 바라면서요.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아 '나비가 되긴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머리를 휘휘 저으며 떨쳐내 봅니다. 

불안이 생기면서 마음에 조급함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어깻죽지 어디쯤 날개가 '삐죽' 하고 돋아나는 중일지도 모르잖아요. 

 

자신만의 시간을 잘 견뎌내면 나비가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정말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조금이라도 더 간절하게 바라고 애쓰는 사람에게 그 변화의 순간이 빨리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든 기다림의 시간은 벼락처럼 끝이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

 

방향

이정표 하나 없이도 씩씩하게 가던 길이 갑자기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자신 있는 길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출발했음에도 엉뚱한 곳에서 난처해질 때가 있지요 ? 

누군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게 싫어서 스스로가 길을 정하면 '고민' 과 '선택' 의 괴로움이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묻고 싶어도 목적지부터 헷갈리니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내가 어디로 가려 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조언도 구할 수 있으니까요. 

우선은 주변부터 찬찬히 둘러보세요. 어떤 건물이 있는지, 이정표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그 다음 내 모습을 한번 살펴 봅니다. 이 참에 신발끈도 한 번 고쳐매구요. 그런 다음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서 보이지도 않는 앞을 보려 애쓰거나 자기 발등만 바라보며 동동거리고 있지 말고 옆 사람을 한번 믿어보면 

어떨까요?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향을 물어보기를 창피해하거나 어려워 하지 않는것,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한

중요한 지침 입니다. 

 

말을 해요! 

'해야 할 말은 할 것', '쌓아두지 말고 할 것' 

이렇게만 한다면 속병 나는 일도 없을 텐데 이렇게 마음껏 하지 못해 마음속에 늘 산불이 나 있는 경우, 많이 있지요?

말해서 안 되는 내용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 마음보다 남의 마음을 살피다가 입을 다물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않아서 .. 나하나 참으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니까 등의 이유로 해야 할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삼켜버리곤 하지요? 

시간이 흘러 참을 수 없겠다 싶어 말하려고 하면 이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르면 입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음은 나에게 끊임없이 요청합니다. 그리고 나는 입으로 그 말을 꺼내기만 하면 되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마음보다 머리가 앞서 입을 막아버린다면 마음은 서서히 표현하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시도할 때마다 그럴 수 없을 거란 걸 알게될 테니까요. 그러면 마음이 고장나고 맙니다. 

그러니 자, 이제부터라도 말을 해 보세요. 표현을 해 보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내 마음에서 하는 소리를 말로 꺼내보세요. 

최고의 심리적 경호는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보살피기에 앞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감지해 내고 말하며

지지해 주는 것 입니다. 

 

걱정이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하게 된다면 가장 빨리 털어버려야 할 것. 바로 '걱정'입니다. 

왜 그럴까요? 걱정이라는 것은 어찌나 번식력이 강한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들이면 그것을 양분 삼아 

금방 몸집을 불리거든요. 일 분 동안 자란 걱정과 한 시간 동안 자란 걱정을 비교해 보면 아실거예요 

그렇게 비대해진 걱정은 종종 나를 압사의 위험에 빠트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걱정 때문에 다른 감정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경우 .. 아마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 걱정이라는 게 지금 진행 중인 일보다는 과거의 일이나 미래의 일일 때가 

많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어떤 일일지라도 걱정을 길게 가져올 필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걱정이 아닌 

'해결책' 을 생각해야 하지요. 걱정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잘 컨트롤 되지 않는다면 생각나는 대로 

지워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 걱정이 번져 나가면 깨끗하게 지워낼 희망의 물걸레 하나씩 

준비해 두는 것은 어떨까요 ?

 

마음 열쇠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종종 '문' 을 비유로 삼습니다. 

흔히 마음을 '연다' 혹은 '닫는다' 고 표현하지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특징을 잘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문과 같이 마음은 열고 닫는데 그치지 않고 때론 굳게 잠가둘 수도 있지요. 

나와 상대의 마음이 통하려면 서로 마주 보며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어느 한쪽만 열어 둔다고 해서 바람이 통하지는 않으니까요. 

내 마음이 닫혀 있으면 상대가 열려 있고, 내 마음이 열려 있으면 상대가 닫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겁니다. 

상대의 마음이 닫혀 있다 못해 굳게 잠겨져 있다면 일단, 열쇠를 찾으세요. 

작은 열쇠, 큰 열쇠, 모양이 다른 열쇠 

 

단번에 맞는 것을 찾으면 좋겠지만, 아마 이런 저런 열쇠들을 바꿔가며 시도해 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문을 열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시도했던 모습들이 굳게 잠겨 있는 문 너머를 통해 상대에게 보였을 테니까요. 

그리고그 모습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힘을 줄지도 모릅니다. 

닫힌 문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기다리면 문은 안쪽에서 열릴 거예요. 

 

어쨌든 출발 

뭔가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그렇게 열심히 

달렸으면서 막상 출발선에 섰을 때 망설여지게 됩니다. 준비가 부실하면 시작 선에 서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미 

출발해야 했을 시단에도 여전히 갈등합니다. 

이 시작은 자신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결정적인 순간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럴 땐 등을 힘껏 떠밀어주는 존재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적절한 때에 말이죠. 

인생을 살다보면 준비만 왕창 해두고 막상 시작을 못 해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바로 그런 존재가 필요하지요. 

'넌 할 수 있으니 어서 시작해 보라고 !' 라는 말뿐인 부추김도 힘이 되지만, 가끔 저렇게 '액션'을 하게끔 

등 떠밀어 주는 친구가 있다면 더 좋겠죠? 

 

끝과 시작 

그렇게 바라던 끝이자 시작인 이곳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 서서 내가 가야 할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생깁니다. 

새롭ㅂ게 돋아난 날개가 날 저 먼 곳까지 무사히 데려다줄지.. 

하지만 지금 믿을 것은 이 날개뿐이겠지요? 

날개를 펴서 힘껏 펄럭이며 바라던 곳으로 잘 도착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 일이 없었으면 좋겠으나 거센 바람을 맞거나 새들과 뒤엉켜 바다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바다로 떨어졋다고 해서 날개까지 사라지진 않을테니까요. 

다시 날아올라 가려고 했던 목적지로 묵묵히 다시 날면 됩니다. 새로운 곳을 향하는 동안의 험난한 과정은 

잊어도 좋습니다. 오로지 '시작' 이라는 그 순간을 등대 삼아, 앞만 보고 힘차게 날아가면 됩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  

이렇게 헤어지게 될 거라면 만나지나 말지, 나에게 다가오지나 말지 

헤어짐을 맞이하는 순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끝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나 헤어짐을 피하고자 만남을 거부할 수는 없어요. 

피할 수 없는 반복이라면 익숙해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찢어지고 아물기를 반복했다고 해서 고통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들 모두 늘 처음인듯 

기쁘고 아프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에 익숙해지기 보다 그 반복에 적응하는 편이 낫겠지요. 

헤어짐은 아프지만, 다른 만남으로 지난 아픔을 기쁨으로 덮고, 그렇게 반복하고 ..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이란 우연한 만남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헤어짐' 이란 그 만남 사이 사이에 찍혀 있는 쉼표일지도요.